하나님에 대한 증명과 증거
우리는 흔히 과학과 이성, 그리고 합리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신앙을 이야기할 때면, 세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조롱 섞인 질문을 던지곤 한다. “눈앞에 하나님을 증명해 보라. 100% 확실한 수학 공식이나 실험실의 결과물처럼 내 눈앞에 들이밀어 준다면 내 당장 믿겠다.” 마치 자신들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 위에서만 살아가는 합리적인 존재인 양 당당한 태도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합리성을 가장한 영적 오만이거나, 혹은 ‘증명’이라는 단어가 가진 본질적 무게를 알지 못하는 치기 어린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냉정하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그토록 갈망하는 완벽한 ‘증명’ 위에 세우며 살아가고 있는가? 결단코 그렇지 않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아침에 무사히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을 완벽히 증명하고 잠드는 사람은 없다. 마트에서 사 온 우유를 마실 때, 그동안의 경험과 상식적인 판단을 믿고 당연하게 마실 뿐이지, 그 안에 독극물이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없다는 것을 매 순간 실험실 수준으로 증명한 뒤에 목을 축이는 사람도 없다. 인간이 나눌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가치인 사랑과 신뢰조차 공식으로 증명해 낼 길은 없다. 만약 상반된 다른 주장의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된 무결점의 상태만을 ‘증명(Proof)’이라고 부른다면, 인간은 삶의 그 어떤 영역에서도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인간은 완벽한 증명이 아니라, 축적된 합리적 ‘증거(Evidence)’를 보고, 그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삶의 중요한 선택을 내리고 전진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합리적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고개를 들어 세상을 정직하게 바라보면, 그 증거는 이미 차고 넘치도록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첫째로, 온 우주의 정교한 질서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설계는 지적인 창조주의 마음과 신성을 강력하게 가리킨다. 광활한 우주가 무질서와 우연 속에서 이토록 정밀한 법칙을 가졌다는 것은, 마치 폭발한 인쇄소에서 우연히 백과사전 한 권이 완성되었다는 주장보다 훨씬 더 큰 맹신을 요구한다.
둘째로, 문화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 내면에 깊이 자리 잡은 변하지 않는 절대적 도덕 기준과 양심은 선한 입법자의 존재를 증언한다.
셋째로, 단 한 번도 무생물에서 스스로 피어난 적이 없는 생명의 기원은 오직 원초적 생명이신 분으로부터만 생명이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학의 모든 관찰과 경험은 생명이 오직 생명으로부터만 온다는 법칙을 지지할 뿐이다.
무엇보다 강력한 네 번째 증거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영혼’이다. 만약 하나님이 없다면 인간은 그저 단백질과 진화의 산물, 즉 기계적인 생화학적 반응의 덩어리에 불과할 것이다. 내일의 행동은 어제 쌓인 화학 반응의 결과물일 뿐이며, 인간에게 선악을 선택할 자유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밤마다 자기 행동을 성찰하고 비평한다. 무례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인내했던 자신을 격려하며 내일의 삶을 결단한다. 생화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스스로 돌아보고 선택하는 자아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우리를 육체 너머의 존재로 빚으신 하나님에 대한 명백한 증거다. 세상은 증거가 없어서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눈앞에 가득한 증거들을 직면하기 싫어, 일부러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증명’을 요구하며 핑계를 대고 도망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위대함은 이 모든 철학적, 자연적 증거들을 넘어, 마침내 인류의 실제 역사라는 시간의 무대 위에 지워질 수 없는 가장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증거를 새겨 넣었다는 점에 있다. 하나님은 저 먼 우주 뒤편에 숨어 인간의 이성적 유희나 가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분은 시공간을 뚫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역사 속에 걸어 들어오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인간의 나약함이 만들어 낸 신화나 허구의 인물이 아니다. 주전(BC)과 주후(AD)라는 역사의 기준이 되어 인류 역사를 전과 후로 나누며 이 땅에 실존하셨던 분이다. 주님의 존재는 로마의 정치가 타키투스의 기록이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 등 당대의 수많은 세속 역사 기록 속에서도 선명하게 확인되는 완벽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 실존의 무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삶의 궤적과 선포하신 말씀,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는 원수들까지도 사랑하고 용서하시며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신 그 사랑의 방식은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의 예언대로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무덤을 비우며 부활하신 사건은 역사가 증언하는 부인할 수 없는 실제 사실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의 법칙을 깨뜨리신 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단순한 성인군자가 아니라, 온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참 하나님이심을 온 천하에 선포하셨다.
동시에 그분은 죄의 쇠사슬과 영원한 파멸의 그늘에 묶여 절망하던 인류를 건져내신 유일한 구원자이시다. 주님은 친히 인간의 고통과 역사 속으로 찾아오셔서 구원의 길을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회의주의의 장막 뒤에 숨어, 보이지 않는 신을 증명해 보라며 냉소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인류 역사 속에 가장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강력하고도 확실한 실존의 증거 앞에 정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그 엄연한 증거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의 문을 열 때, 우리는 비로소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위해 피 흘리셨으며,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참 하나님이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하는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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